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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미술관

전시안내

서혜영 개인전

금호미술관지하1층

배트맨 토토 모바일,얼룩,브릭그리고낯선일상
글|이대범(미술평론가)


거울과배트맨 토토 모바일은내부의텍스트를반영한다는점에서유사하다.물론,그들의지향점은다르다.거울은내부를선명하게반영(일정정도의왜곡은있지만)한다는점에서내부지향적텍스트이다.반면배트맨 토토 모바일은내부를희미하게반영하고,시선을외부로확장시킨다는측면에서외부지향적텍스트이다.이러한점을고려한다면배트맨 토토 모바일에반영된피사체는확장되는시선을가로막는‘얼룩'에지나지않는다.그러나생각해보면,내부와외부를구분하기위해서는배트맨 토토 모바일이필요하고,그곳에는필연적으로‘얼룩'이지기마련이다.그렇다면배트맨 토토 모바일에필연적으로발생할수밖에없는‘얼룩'을단순히외부지향적시각을저해하는요소쯤으로간과하는것이옳은것인가?
답을구하기위해,다른방향으로질문을던져보자.과연‘얼룩'의정체는무엇인가?그리고‘얼룩'은그곳에서무엇을하고있는가?배트맨 토토 모바일의맺힌잔상을추적해보면그것의정체는내부에서외부를바라보고있는자기자신이며,자신이서있는내부공간이라는것을알수있다.그것은희미한형상을하고있지만마치거울을대면하고있을때와같이지금-여기를비추고있다.그러나정작배트맨 토토 모바일에선명하게나타나는것은저너머에있는외부풍경이다.그러기에배트맨 토토 모바일은‘희미한'내부와‘선명한'외부가동시적으로존재하는공간이다.이것은배트맨 토토 모바일에항시내재된것이지만,내부와외부라는이분법적시각으로는발견할수없는제3의공간이다.그러기에쓸모없는것으로보이던‘얼룩'의정체는배트맨 토토 모바일이제3의공간임을알리는하나의명확한지표이다.

브릭(brick)위에놓인익숙해서낯선풍경들
항상존재한다고해서,그리고그곳에지표가있다고해서모두가알수있는것은아니다.하나의작업(2002년Sadi윈도우갤러리설치작업)으로시작해보자.유리창은언제나그러했듯이안과밖을구분한다.우리는유리창을이것과저것을명확하게분별하는하나의경계선쯤으로인식한다.내부에서는안을보기위한창문으로,외부에서는안을들여다보기위한쇼윈도우로말이다.그러나서혜영은단순히안과밖으로구분되지않는또다른공간이그곳에있음을인식한다.그들이중첩하며,충돌하고,소통하는공간을포착한다.그곳은바로유리창표면이다.서혜영은유리창이라는2차원적표면에자신이인지한새로운3차원적공간을재생시킨다.벽돌하나하나를올리듯그곳에라인테이프(‘얼룩')를이용해자신이발견한중첩과충돌의공간을형상화한다.
서혜영은여기서멈추지않고한발더나아간다.이제내부에투사된외부의빛을형상화한다.그는유리창에붙어있는라인테이프가만들어낸내부의그림자를따라또다시라인테이프를붙여나간다.하나의건물을완성하듯그는벽돌을쌓아간다.여기서중요한것은그곳이유리창의또다른이름이라는것이다.그곳은외부를응시하는내가서있는지점이며외부의빛이투사된지점이다.그러기에그곳은유리창처럼안과밖이라는이분법적구획에서벗어나있는서로중첩하며충돌하고발설하는소통의장이다.이렇듯서혜영의작업에서쌓여진브릭들은일견외부시선을차단하는유리창의‘얼룩'과도같은존재처럼보인다.그러나브릭은공존할수없다고생각되던그들이(안과밖,밀실과광장등이분법으로구획된다고생각하는모든것들)상호간에나누고있는소통의언어다.서혜영은브릭하나하나를이어붙이면서그들의언어를추적하고,듣고그리고그것을형상화한다.
최근작업에서도브릭은지속적으로등장한다.브릭의표현방법에있어서라인테이프에서연필로(2003년개인전에서연필을사용)의변화가있었지만,여전히브릭은그의화면에주요지점을차지하고있다.차이가있다면,브릭이일정공간의일부를차지하고있는것이아니라화면전체를뒤덮고있다.연필로그려진브릭은미세하여보일듯,말듯희미하게그러나화면에굳건하게밀착되어있다.즉,캔버스표면과브릭은한몸이되어있다.이것은작가가지금까지는특정한이분법적공간을탈주하는출구의지표로브릭을위치시켰다면,최근의작업에서보이는작가의눈자체가브릭이된것이다.다시말해브릭이탈주의지표로사용되던것에서작가의눈자체가탈주의지표가된것이다.
그렇기에브릭위에그려진대상들에있어서도변화가있다.그간의작업에서대상들은형태를가지고있으나세부적구체적구체성을가지지못하는관념적존재(마치그림자처럼)로제시되었다.반면최근의작업은작가의삶과밀착되어구체적인물질적대상으로제시된다.그곳에는일상의소소한사물,풍경들이자리한다.반복되는일상속에서발견되는이러한익숙한대상들은그의정적인화면과조응한다.그곳의시간은정지되어있는것처럼고요하다.자고있는아이,작업실주변의풍경,맨드라미,오래된아파트의풍경,책장등자신의주변에서쉽게마주할수있는대상들이다.그러나주변에있는모든것들모두가인식되는것은아니다.그곳을인식하는주체의시선이닿을때,즉그들과소통하고대화를할때만이그들이인식소로작동한다.서혜영은그곳에자신의시선을부여한다.그것은희미하지만뚜렷하게자리하고있는무수히많은브릭들이다.이러한그의시선을통해익숙한것으로보이는일상의대상들은낯선풍경으로재맥락화된다.그리고그곳에서무수하게펼쳐진브릭을타고대상,그리고그것에대면하고있는주체와소통하고있다.

제3의공간에서지속되어야할‘생산적대화'
유리창너머로외부의풍경을바라보는것은관조적이고정적이다.그리고그곳의‘얼룩'은그것을방해하는저해요소이다.그러나서혜영은오히려유리창에‘얼룩'을만든다.그리고사람들의관심을유리창표면에생성된그러나인식하지못했던공간에머무르게한다.이번작업에서도그의캔버스는무수히많은브릭들이붙어있는유리창과다름없다.안과밖을가르면서견고하게서있는벽과같은유리창.그러나브릭들은텅비어있다.그리고최근작업에서서혜영은자신의일상을채웠다.그러나그것은누구나볼수있는익숙한일상처럼보이지만,유리창의‘얼룩'을지표로읽을수있는자가인식한낯선세계가담겨있다.관객들은텅빈기표를가득하게만든서혜영의언어를따라그곳에자신의의미를내려놓을수있을것이다.이렇듯관객과작가의게임(비우고(브릭)→채우고(브릭위에놓인형상)→비우고(작가의형상을낯설게받아들이는관객)→채우고(자신의일상적경험을올려놓는관객)→또다시비우고(그것마저도비우는브릭))이지속될때,관객과작가는작가가발견한제3의공간에서‘생산적대화'를이어나갈수있을것이다.그흥미진진한게임을기대해본다.